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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Column] Fine Country, 벌금 이야기

글쓴이 : Keith 날짜 : 2014-02-08 (토) 23:14 조회 : 3855
  어린 시절, 문지방에 걸터앉으면 복 나간다고 하셨던 아버지 말씀이 기억 난다. 밤에 손톱을 깎지 말라는 얘기도 오롯하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렴풋이 이유를 알 듯도 하다. 문지방이 닳으면 틈새가 생기고, 만약 여닫이 문이라면 제대로 닫히지도 않았을 터. 겨울에 그 틈새로 찬바람이 들어오니 복을 핑계 대서라도 잔소리를 할 만했다. 오늘날처럼 가옥형태가 아파트라면 구조적으로 외풍을 차단하니까 이런 걱정까지 할 이유도 없다. 또 요즘과 같이 방 안이 환하다면 뭐가 대수겠냐 마는, 전기도 들어오기 전이었다면 밤에 손톱을 깎다가 파편이라도 튈 경우 수습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금기는 사회학이나 인류학적으로 이유를 궁구할 수 있다. 중동에서는 술과 돼지고기가 이슬람 율법에 의해 금지된다. 종교적인 이유가 있을 테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50도를 웃도는 더위에 돼지고기는 쉽게 상해서 탈이 나는 일이 다반사였을 것이고, 그렇잖아도 더운데 술까지 더해지면 위험한 지경에 처하기도 했을 테니, 아예 종교적으로 금한 것은 아닐까. 모스크에서 술에 취해 제대로 코란을 읽지 못하는 한 무슬림을 목격한 무함마드가 금주를 명령했다는 일화도 전해지지만 말이다. 지금은 부유한 산유국이니 냉방이 잘 된 집에서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될 텐데, 그 오랜 관습(율법)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았을 법하다.

  1965
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된 후 신생독립국으로 외세에 의해 생존마저 위태로웠던 싱가포르는, 리콴유 주도 하에 강력한 정부를 추진한다. 인종도 음식도 종교도 각기 다른 이민족과의 융화를 이뤄내야 하고, 일사분란하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특히, ‘Clean & Clear’ 정부를 추구했으니 이에 반하는 행위들에 대해서 강력한 통제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흔히들 ‘Fine Country’라고 하는 싱가포르의 상징성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예컨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음료수나 음식물을 섭취하다 보면 흔들리는 바람에 내용물이 쏟아져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내부가 더러워질 수도 있다. 음식물에서 풍기는 냄새도 예의 그 정책에 위배되기는 마찬가지다. 껌을 씹다가 바닥에 뱉으면 시꺼멓게 딱지가 생긴다. 당연히 도시미관이 나빠질 게 뻔하니 제재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고의는 아니겠지만 화장실을 사용한 후 물을 안 내리면 악취가 진동할 테고 자칫 오래 방치해두면 뒷감당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가장 쉬운 계도방법으로 떠오른 것, 바로 벌금이 아니었을까.



싱가포르는 독립 후 국익이라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한 통제사회를 주창하였다. 통제사회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것이 강력한 법 체계, 이른바 벌금이 아닐까. 전 세계에서 태형이 존재하는 몇 안 되는 나라이듯,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한 채 공중도덕을 지킵시다와 같은 교화나 계도를 하기보다, ‘승선 시 두리안이나 반려견을 반입하면 벌금 부과라는 소위 일벌백계의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율에 맡기기보다 규범으로 통제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면적이 500 배가 넘는 말레이시아의 국민총생산을 앞지를 만큼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싱가포르. 과연 국민의 수준은 그에 상응하게 선진적일지 궁금하다. 혹여 무거운 형량이나 벌금이 무서워서 움츠린 채 고분고분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JB나 바탐 등지에 가면 마치 해방구에 온 듯한 자유를 느끼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이리라. 타인에 대한 배려도, 친절한 웃음도, 모두 겉치레 같다는 상념이 가시질 않는다. 좋은 차를 타며 잘 갖춰진 콘도형 주택에서 가정부가 마련한 음식으로 주말마다 파티를 열고 온 가족이 함께 운동을 하며 여가를 즐기는 그 상향된 삶의 질이, 마치 인형극에서 배우가 조정하는 무대 위 (외관상 화려한)인형이 누리는 그것 같다면 지나친가. 아마도 그 인형은 자신의 행동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믿겠지만.
(2014.2.8)


왕순대 2014-02-10 (월) 09:12
월요일 아침, 즐거운 마음으로 클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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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2-10 (월) 12:29
클릭해주셔서 제가 외려 더 감사합니다. 딱딱한 소재의 글이지만,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거창한(?) 취지였습니다. 이제 쉽게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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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2-10 (월) 12:27

규제와 자율. 조금 어려운 주제인가 봅니다. 한 번은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fine이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만 쓰여졌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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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14-02-11 (화) 12:13

Lian님  멋지세요!
좋아서 부모님께도 카톡으로 링크 보내드렸어요:)

늘 느끼는 거지만 싱가폴 정부가 예전부터 국민들을 말 잘듣게 트레이닝 시킨 것 같다고 할까요?

저도 싱가폴만 벗어나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긴한데 며칠씩 있다보면..... 싱가폴이 낫다.. 역시 싱가폴..이라고
다시 느끼게 되더라구요.. 저도 길들여 졌나봐요 ㅋㅋㅋㅋ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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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2-11 (화) 13:40
감사합니다. 밴쿠버는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꼭 가보고 싶은데, 거기 사는 지인도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대요. 그래도 가끔씩 그리울 때가 있다고 하더군요.
뜬금없이 밴쿠버? 여기 싱가포르도 정들면 괜찮은 곳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가족이 함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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