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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Column] HDB, 집 이야기

글쓴이 : Keith 날짜 : 2014-02-26 (수) 12:40 조회 : 4188



  작년 9월에 윤대녕의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문학동네)이 출간되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소설을 읽기가 쉽지 않은 터라, 어렵게 구한 이 책을 내처 두 번을 읽으며 몇 개월째 작품을 곱씹는 중이다. 어느새 쉰을 훌쩍 넘긴 작가는, 길을 잃고 헤매던 젊은 날, 절망하고 자학하던 그 고통의 순간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조곤조곤 인생을 관조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은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공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뚜렷이 떠오르는 바가 없다. 다만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았던 것 같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그러한 시간의 집적이자 흔적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청춘의 방황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원초적 물음에 있었지만, ‘막막함’, 이를테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번뇌를 가중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물론 제한적인 만남이 있었을 뿐이지만, 싱가포르 사람들은 고통에 대한 사유가 치열하다는 생각까지 해본 적이 없다. 열대지방 특유의 낙천성 때문일까, 아니면 경제적 풍요가 그 이유일까. 이 곳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하고, 그 와중에 도태되기도 하겠지만,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다가 싱가포르로 온 아이들은 외려 학교에 가고 싶다고 조른다니 대체 그 차이는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위 소설집 속의「검역」이라는 단편은 일관된 주제에서 다소 빗겨간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이구아수 폭포, 파리, 앙코르 와트 등을 가기로 했던 약속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그 여행지는 단순히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만다. 그 상실감도 클뿐더러, 현실의 벽이란 다름 아닌 24평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아파트 가격의 절반을 은행에서 융자받는 바람에 대출금을 갚느라 휘청거릴 지경에 처한 것을 이른다. 아마도 이것은 비단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만 유일하게 있다는 전세 제도도 서서히 월세로 전환되는 추세이고, 어마어마한 전세금에 집 없는 서민만 서럽기 이를 데 없다. 설혹 집을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예의 소설 속 얘기처럼, 빚에 허덕거리며 일생을 사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러니 무슨 삶의 질을 따질 텐가.

  
싱가포르에 와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도 바로 이 집에 관한 얘기다. 호화로운 개인 저택도 있고 콘도 형태의 아파트도 있지만, 영국식 영어로 ‘Flat’이라고 통용되는 아파트가 싱가포르의 보편적인 주택구조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 이 Flat을 더욱 업그레이드시켜 HDB(Housing and Development Board) Flat이라고 부르고 있다. HDB는 바로 싱가포르에서만 존재하는 공동주택의 대명사가 된 셈이다. 소위 영구 임대주택으로 불릴만한데 싱가포르 주민의 85% 가까이가 산다고 하니, 한국의 주택공사에서 제공하는 임대 아파트격이지만 부정적 이미지는 찾을 수 않다. 종류 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일정 금액만 불입하면 저리로 99년의 융자기간이 주어진다고 하니까 거의 평생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혜택이 아닐 수 없다. 통제사회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있는 싱가포르이지만, 최소한 기거할 집이 있고, 주거문제로 인한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으니 그만큼 여유 있게 살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HDB에는 학교, 슈퍼마켓, 병원, 운동장 및 호커센터Hawker Centre까지 두루 갖처져 있다. 무엇보다 호커센터라는 저렴한 식당까지 곁에 두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먹고 자며 생활의 여유를 즐기는 모든 것을 정부에서 책임을 지는 셈이다. 작년에 리틀 인디아에서 일어난 폭동처럼, 에어컨도 없는 열악한 환경의 기숙사에서 한데 집단거주를 하는 제 3세계 이주노동자들의 반발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은 있지만, 싱가포르 주민들의 집단 시위에 관한 뉴스는 들은 바가 없다. 우선 먹고 살게는 해주지 않는가. 이런 보편적 복지가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의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보편적 복지라는 공약으로 다수의 선택을 받은 후보는, 그 공약을 유예시키며 지금껏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면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복지정책이 보편화되어서 이렇듯 기형적인 집값의 고공행진과 부동산 취득으로 인한 천문학적 가계부채, 또 그로 인한 미래의 불안이라는 연쇄적 파국을 없애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숱한 사회문제의 시원은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고, 내 집도 없이 평생을 떠돌아다니는 처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한탕주의, 황금만능주의라는 자본주의적 병폐가 만연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는지.

  
그래서 싱가포르의 주택정책만큼은 부럽기 그지 없다.
  
(2014.2.26)


붕어킥 2014-02-26 (수) 16:08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싱가폴 주택 정책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싱가폴은 자기 소유 재산으로 자기소유의 집,차 등을 일정기간이 지나면 반환해야하고 평생 소유 하면서 가족들에게 물려줄수 없으니 그것도 어찌보면 평생을 자기 재산도 없이 살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단점도 되지 않겠냐 라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 그런다면 그런생각을 가질 만도 하지만 싱가폴 에서 그 법아래 산다면 나쁘지 않은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 그래도 싱가폴은 젊은 나이에도 일만 하고 있다면 집걱정 없고 내집마련에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니 저는 참 좋다고 생각해요 ~ 하지만 HDB는 단점이라고 하자면 우리같은 외국인들이 싱가폴 시티즌 또는 PR자와 혼인을 할때 생기는거 같아요.. HDB 정책상 양쪽이 시티즌 또는 PR자 이여야만 하다보니 현재 PR 받기가 힘든 시점에서 여유가 있는 집안이 아니라면 HDB마련전에 PR 을 받기 위해 길면 1년이고 ~ 3년이고 기다리는 경우가 참 많더라구요 ㅠㅠ

콘도나 개인 주택은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부담도 크고 참 안타까운 부분이 있기도 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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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2-26 (수) 19:19
현재 소유하는 집과 차를 반환해야 한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단위 인구 당 전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지만, 개인의 소유물도 되돌려준다면, 이건 사회주의아닌가요?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래도 유산을 남기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도 있듯, 소유의 개념을 제한하고 차라리 집걱정 없이 살 수가 있다면 좋겠어요. 대출 원리금에 허덕거리는 한 사람으로서, 사실 너무 아까워요. 실소유주가 은행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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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킥 2014-02-27 (목) 10:29

싱가폴은 개인 주택은 모르겠지만 HDB나 콘도는 99년 뒤에는 정부한테 돌려줘야하는 집이고, 차는 최대 10년까지만 끌수 있고 정부 반환하는 거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0년이지나면 무조건 차를 바꿔야 하거나, 끌지 말거나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한차는 10년이상 끌수 없고 나라도 작은데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아버리면 안되니 정부에서 차값도 비싸게 올리고 한차는 10년이상 끌지 못하게끔 관리하고 있는거라고 하더라구요 ㅜㅜ

얼마전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 인터뷰에서 싱가폴의 차값을 듣고는 경악하더라구요 ㅋㅋㅋ 
차값은 정말 우리나라에서 3천~4천이면 살 차들도 억대 이니 그야말로 ㅎㄷㄷ...

그래도 걱정없이 사는게 최고 인거같아요 !!  물론 어느 것이든 단점은 있지만 자국민을 위한 복지라던가 법은 아주 잘되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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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2-27 (목) 12:34

많은 것을 알고 갑니다. 차의 경우, 최대 10년이라면, 다소 획일적인 느낌입니다. 사람에 따라 old & new, bad & good에 대한 견해도 다를 텐데 말이죠. 참 특이한 나라이지만, 그래도 주택정책은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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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2-27 (목) 12:37
통제와 별개로, 자국민에 대한 혜택 또는 배려는 확실하다는 생각. 웬만한 콘도의 월세가 3,000~3,500불이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citizen이 아닌 이상 그 세 부담은 어마어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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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킥 2014-02-27 (목) 12:14
부담이 한국사람들 내집마련 보단 훨씬 덜할껄요 ? 왜냐하면 HDB나 콘도 계약시에 집값의 30%? 정도는 보증금? 예약금 개념으로 먼저 캐쉬로 지불하고 나머지 집값은 입주하고 나서부터 연금 개념의 CPF라는 거에서 99년동안 할부(?) 로 빠져 나가요 ~ 단점은 싱가폴은 HDB > HDB로 이사는 딱 한번만 허용 되요 ~ 하지만 4플랫룸에서 5플랫룸으로 업글하여 이사는 가능하지만 4플랫룸에서 3플랫룸으로 다운그레이드 해서 이사가는건 허용이 안된다네요;;

싱가포리안 / PR 자는 CPF가 있는데 월급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0% 정도를 CPF로 빠져나가고 월급을 주는 회사측에서도 이 사람을 위해 CPF비용을 지불해야 해요~ 따라서 2배정도가 연금으로 한달에 한번씩 쌓인다고 보시면 되고

이 CPF는 보험처럼 차,집,병원(정부소유 병원) 비로 쓸수 있어요..
 
얘기가 딴대로 흘렀지만.. 암튼 집값은 비싸지만 부담은 적은거 같아용 ㅎㅎ 하지만 집이 지어지기까지 기본 3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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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2-27 (목) 12:45
'99년 동안의 할부'란 말은 거의 공짜란 얘기와 다름이 없을 듯하네요. 예컨대, 2억을 99년으로 나눠서 다시 12개월 할부액을 계산하니 17만원 미만. Wow!
우리나라도 보편적 복지도 확충되고, 재원도 풍부한 부자나라가 되면, 북유럽이나 싱가포르처럼 되겠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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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킥 2014-02-27 (목) 13:00
HDB는 보통 신축건물은 4억, re-sell HDB는 6억부터 시작해요~ 인테리어하고 집이 깨끗한 집을 re-sell하면 8억부터! 콘도는 신축 건물도 10억부터 시작해서 부담은 좀 잇지만.. 그래도 99년 할부인게 어디에요 ~ ㅎㅎㅎ

keith 님 말처럼 우리나라도 얼른 성장하길 바라요! ㅎㅎ 정말 언제쯤일지는 모르겟지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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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2-28 (금) 22:09
HDB도 가격이 만만하진 않네요. 그래도 99년은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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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style 2014-03-18 (화) 08:44

자동차 정책에 대해서 저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정말 똥차 때문에 엄청난 사고나서 뒤에차들이 죽는 뉴스들 보셨죠? 사람은 제한이 없으면 정말 막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답니다. 10년이면 어느차든 수명을 생각해볼 문제이고 당연히 국제도시 제한된 섬나라에서는 정말 필요악일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주의요? 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적인게 필요하듯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적절히 잘 섞여져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생각이 드네요. 예전에 소형차가 인천 공항가는 고속도로에서 멈춰서서 뒤에오던 큰버스가 밑으로 떨어져 많은 사망자를 내고 그런 사고들이 종종 보이는게 너무나 후진국 스러운 나라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거든요... 정말 생각이 앞서지 못해서 받아들여지지 못할뿐 확실히 이상적인 선진국이며 부자들에게 정말 이런 낙원은 없을듯 합니다. 99년소유도 콘도개념으로 살려면 이보다 더 투명한 나라는 없을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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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14-03-19 (수) 11:24

싱가포르에 상당히 호의적이시네요. 싱가포르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제한적인 조치는 불가피하다는 데 저도 일정 부분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도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거부감이 있습니다. 택시처럼 일 년만 돼도 수십 만 킬로를 주행한다면 제한이 필요하지만, 예를 들어 주말이나 평일에 쇼핑할 때만 가끔씩 쓰는 경우라면, 10 년이 지나도 채 5만도 못 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경우의 수가 있기 마련이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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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style 2014-03-20 (목) 15:19

그 여러 경우의 수를 따지면 오죽 좋겠지만 사회라는게 위에 이야기드렸듯이 정말 막살이가 너무 많습니다..ㅠㅠ 진짜 이건 아마 닥쳐보면 이런 사회주의적 시스템보다 더 황당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나라마다 정책이 다르고 그런 제도가 마음에 들고 능력이 된다면 선택해서 사는 것이겠죠. 케이스님의 생각도 존중합니다. 다만 한국에서 중산층이 살기에는 사회안정망이 너무 부실할때가 많답니다. 중산층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자산규모 15억정도에 월수입이 500이상인데 사실 싱가포르가 그것보다 조금더 위죠.. 그러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도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지는 거겠지만요.. 사실한국분들이 여행으로 느끼는것보다 생활에서 이런점을 알게되면 좀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죠. 오히려 한국은 그래서 서민과 대중에게 참 좋은 나라인것 같습니다. 그런 대중들도 요즘 국가와 사회시스템에 참 많은 것을 건의하고 요구하는 현상도 아마 이러한 선진시스템과 사회를 원한다고도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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